기사 메일전송
인턴기자 강민재의 역사 산책 - 독일의 과거사 청산에 대한 또 다른 시각 #3 - 세대교체와 과거사에 대한 문제의식
기사수정

‘재나치화’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과거사 청산이 퇴색 되어 버린 1950년대와는 다르게 1960년대가 되자 독일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전쟁 이후 민주주의 교육과 그에 따른 인권 의식을 함양하고 사회에 진출한 젊은이들의 주도 하에 과거사 청산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출처 = Daum 영화> 드라마 <홀로코스트(1978)>의 포스터.

1959년에 재나치화를 외치던 독일의 극우파들에 의해 유대인 묘지가 훼손되고 나치당의 상징인 하켄 크로이츠가 벽에 그려지는 사건들이 일어나자 국제 여론은 경악했다. 그런 와중에 1961년 이스라엘에서 이루어진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과 이어지는 ‘아우슈비츠 재판’,  ‘나치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논쟁’ 등은 독일 사회에 큰 압박과 자극을 주었고 미국에서 상영된 드라마인 <홀로코스트(1978)>을 통해 독일인들 사이에서 잊혀졌던 과거사에 대한 관심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 프레시안 DB> 유대인 추모비 앞에 무릎 꿇은 빌리 브란트 수상.

 

1960년대부터 현실 정치의 보수화와 복고주의에 저항하기 시작하며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전후세대의 사회개혁 운동은 현 사회의 문제들이 과거사에 대한 불충분한 청산 때문이라 판단했다. 특히 독일의 극우정당인 독일국민당에 나치 전범들이 상당수 있다는 것을 폭로하는 등의 정치적인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개혁 운동에 힘입어 집권한 진보적인 사민당은 과거사에 대한 정치/도덕적 청산 자세로 독일 시민 사회의 역사의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특히 1970년 빌리 브란트 수상이 바르샤바에 있는 유대인 추모비 앞에 무릎 꿇은 사건은 유명하다. 또한 1985년 종전 40주년 기념식에서 바이체커 대통령은 1945년의 종전일은 나치로부터 해방된 날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독일의 변화와 그에 따른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겉으로 보았을 땐 독일인들의 국민성이 대단하여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독일의 과거사 청산 노력은 집권당인 사민당에게는  큰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했고 당시 국제 사회가 독일에 큰 압박을 가하였고 특히 아이히만 재판과 같은 재판을 활발히 해오며 나치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계속해서 들쳐내었던 유대인 사회의 힘도 결정적이었다.

따라서 만약 독일의 과거사 청산 사례를 보고 지금까지 독일의 국민성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사실들을 보며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계속)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koreafrontier.com/news/view.php?idx=10169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