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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강민재의 유럽여행기 #5]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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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로뇨로 가는 길. 크고 작은 언덕들이 구불구불하다. 무너져버린 옛 순례자들의 쉼터도 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 - 와인의 땅 라 리오하(La Rioja)

- 독일 친구 루벤(Ruben) -

 

2016109

아저씨, 희태형, 그리고 나는 아침을 먹고 해가 뜨지 않은 아침에 토레스 델 리오를 나섰다. 마을을 나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뒤를 선홍색으로 물들이며 해가 떠올랐다. 토레스 델 리오와 해를 등지고 라이온 킹의 오프닝처럼 선홍색으로 물들은 언덕들을 오르내렸다. 선홍빛은 밝고 깨끗한 희망으로 우리를 응원하는 듯 했다. 해가 지는 석양의 붉은빛 차분함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토레스 델 리오 뒤로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

오늘은 특히 가파른 크고 작은 언덕들이 많았는데 어제 나름 무리를 했던 나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다. 특히 아저씨와 형의 걸음이 굉장히 빨리 걸어서 쫒아가느라 애를 쓰기도 했다. 처음 만난 비아나(Viana)라는 마을에서 셋이 벤치에 앉아 말린 소세지 쏘시쏭(Saucisson)과 아침 먹을 때 챙겨온 빵과 치즈를 곁들여 간식을 먹었다. 사실 하루 일과 중 이렇게 아무데나 앉아 쉬면서 간식을 즐기는 게 순례의 묘미이기도 했다.

아까부터 오른쪽 무릎이 불편했는데 비아나를 지나 꽤나 큰 마을인 로그로뇨(Logroño)쯤 가서 걷기 힘들어졌다. 결국 나는 로그로뇨에서 일과를 끝내기로 했다.

로그로뇨는 라 리오하(La Rioja) 주의 주도이며 순례길에서 리오하 지방으로 들어서는 첫 도시이다. 에브로(Ebro)강 위로 다리가 놓여 있었고 그 건너로 보이는 첨탑들이 멋있는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었다. 두 개의 첨탑이 멋지게 솟아 있는 고딕양식 건축물인 산타 마리아 델라 레돈다 성당(Catedral de Santa Maria de La Redonda) 앞의 커다란 광장의 야외 의자에 셋이 앉아 맥주를 시켰다. 이윽고 살짝 살얼음이 껴있는 시원한 맥주가 나왔다.


다리 건너 로그로뇨의 풍경.

로그로뇨는 하루를 묵어가기에 굉장히 매력적인 도시였다. 거리에는 아름다운 아치들이 건물들 밑으로 뻗어있고 오래된 성당들의 파사드(façade : 성당의 정면부)가 이 도시를 더욱 고풍 있게 만들고 있었다. 아저씨와 희태형은 다음 마을까지 갈 수 있다고 하여 보내게 되었다. 이 길 위에서 다시 만날 수도, 혹은 마지막일 수도 있었다. 따라서 부엔 까미노 !(Buen Camino : 좋은 여정 되세요)로 두 사람과 헤어졌다.

이 날은 내가 직접 장을 봐서 스파게티를 해 먹으려고 했다. 햇빛 가득 들어오는 부엌에는 긴 노란 머리를 묶고 노란 수염을 길게 기른 남자 한 명이 창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친구는 내 여행용 기타가 신기하게 보였는지 쳐 봐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마침 소스를 너무 데워서 증발하여 더 필요한 상황이어서 소스를 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그 친구의 소스를 받아 조금 쓰고 그 친구가 치는 기타 소리와 함께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었다. 그 친구는 기타를 굉장히 잘 쳤는데 순례길 중에 나 말고 기타를 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심지어 이 친구는 유모차에 짐을 싣고 다니는데 나처럼 기타를 가지고 다녔다.

이 친구의 이름은 루벤(Ruben). 27살의 독일인이다. 루벤은 곧 자기 기타를 가지고 와서 나랑 같이 연주를 했다. 여러 구경꾼들이 모여들고 나중엔 브라질 사람들까지 껴서 우리의 연주에 맞추어 보사노바(Bosa Nova : 브라질의 대표 음악 중 하나)를 불렀다.

 

20161010

어제 루벤이 나보고 8시에 일어나서 같이 갈 수 있냐고 했지만 나는 7시면 출발하기 때문에 해 뜨기 전에 출발했다. 로그로뇨를 나와 아름다운 호수가 펼쳐진 공원을 통과해 아름다운 포도밭이 넓게 펼쳐진 나바레떼(Navarrete)라는 중세마을을 지나쳤다. 어제 아저씨와 희태형이 여기서 묵었을 터였다. 조용한 나바레떼를 나오다가 어디서 본 듯한 뒷모습을 보았다. 바로 주비리부터 빰쁠로나까지 함께 걸었던 아이리쉬 친구 클리였다. 정말 오랜만에 본 클리는 호주인 남자, 이탈리아 여자와 함께 걷고 있었다. 곧 나랑 같이 걷게 되었는데 미국인 친구인 브리트니는 어제 술을 많이 먹어서 늦게 오고 있을 거라고 했다.

사실 이 친구들은 발걸음이 지나치게 빨라서 그다지 만나고 싶지는 않았었다. 정말 좋은 친구였지만 역시 오늘도 이 친구를 따라가느라 너무도 힘들었다. 포도들이 수 없이 펼쳐진 언덕들. 떨어진 포도송이들을 서리도 하며 오늘의 목표인 나헤라(Najera)라는 마을로 향했다. 언덕 위에서는 금방 도착할 것처럼 보이던 나헤라. 왜 이리도 먼지, 한참을 걸어 겨우 도착했다. 나헤라는 다리를 건너 뒤에 붉은 암벽이 버티고 있는 마을이었다. 알베르게 앞에서 체크인을 기다리는데 한 프랑스인 할아버지가 기타렐라를 들고 오셔서 나보고 한국 노래를 연주하자고 하셨다. 놀랍게도 할아버지는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그리고 최성원의 제주도 푸른밤을 아셨고 함께 연주를 하며 노래도 불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영상도 찍었는데 한국의 음악이 세계무대에 오른 것 같아 뿌듯해졌다. 알고보니 이 할아버지는 세계 각국의 노래들을 전부 연습하시는 것 같았다. 클리가 알고 있는 아일랜드 노래도 연주하셨다.


나헤라 뒤에는 암벽이 버티고 서 있다.

저녁 쯤 되어 루벤도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그는 포르투갈인 구스타부(Gustabo)와 같이 파스타를 먹고 있었는데, 구스타부는 나에게도 파스타를 먹을 것을 권하였다. 구스타부는 예전 빰쁠로나부터 자주 보던 친구였는데, 빰쁠로나에서도 갑자기 나타나 내 발의 물집 치료를 해주고 사라지거나 토레스 델 리오에서는 갑자기 수영복을 입고 나타나 우리 숙소에 있던 수영장에서 리투아니아 여자애랑 같이 수영하며 나보고도 꼭 해야 한다면서 남다른 오지랖을 발산하던 친구였다. 이 친구는 특히 입에 욕을 달고 살았는데 말끝마다 F로 시작하는 욕을 붙였다.

루벤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다. 루벤은 놀랍게도 고향인 뮌헨부터 여기까지 2000km를 유모차를 끌고 걸어왔다고 했다. 오스트리아, 스위스, 그리고 프랑스를 지나온 것이다. 정말 세상엔 특이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루벤은 나에게 내일 7시에 같이 출발하자고 했다. 어제 같이 기타를 쳤던 게 어지간히 좋았나보다.

[에필로그]

 

아치들이 멋있게 이어진 로그로뇨의 거리.

산타 마리아 델라 레돈다 성당의 파사드.

포도밭이 앞에 펼쳐진 나바레떼의 풍경.

[다음 주 계속]

[/사진-강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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