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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강민재의 유럽여행기 #6]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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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으며 연주를 하는 루벤(나중에 이 사진이 마음에 들었는지 꼭 보내달라고 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 - 뜻밖의 여정 in 그라뇽(Grañon)

-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 -

 

2016년 10월 11일

뜻밖의 만남은 정말 뜻밖의 여정을 불러오는 것 같다. 특히 루벤과의 동행이 그러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웬일로 루벤이 일찍 일어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루벤과 유모차와 함께 마을과 나헤라의 붉은 암벽들을 지나 밀밭이 펼쳐진 평야로 다시 나왔다.

루벤의 유모차는 정말 편해 보였다. 그는 이 유모차를 인터넷에서 150만원 가량 주고 샀다고 했는데, 그 안에 텐트며 이불, , 기타, 식기류, 식량 등등이 전부 들어있었고, 타이어가 크고 스프링이 달려있어 충격 흡수도 되었다. 그래서 평지에서 밀 때는 거의 미는 힘도 들지 않았다. 확실히 이것만 있으면 뮌헨에서 여기까지 올수 있을 만도 하겠다 싶었다.


루벤과 그의 유모차

그는 뮌헨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고 회사를 다니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때려치우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긴 수염과 머리카락은 뮌헨에서부터 기르기 시작했는데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자를 생각이라고 했다. 이걸 듣고 세상엔 이렇게 특이한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이 많구나 생각했는데, 루벤 말로는 자기 말고도 비슷한 사람들을 이 길 위에서 많이 만났다고 했다.

루벤의 유모차가 너무 좋아 보여 내 침낭만이라도 실어도 되겠냐고 물어보니 그냥 가방을 다 얹으라고 했다. 가방도 없이 걷는 건 처음이었는데 마치 게임에서 치트키를 쓰는 것 같이 느껴졌다. 덕분에 내 기타도 걸으면서 칠 수 있었는데, 내가 유모차를 교대하고 루벤에게도 기타를 칠 수 있게 해줬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걷다가 지난 번 에스떼야와 토레스 델 리오에서도 본 적 있던 리투아니아 여자를 만났다. 그 친구는 보기에도 엄청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짊어지고 잘도 걷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용서의 언덕쯤이었는데, 슬리퍼를 신고 걷고 있어서 충격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지난번 봤을 때까지도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다행이도 오늘은 신발을 구했는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이 친구도 우리와 함께 걷게 되었는데 갑자기 유모차를 밀어도 되겠냐고 묻고 유모차를 밀고 가기 시작했다. 나중엔 우리가 밀겠다고 말해도 극한으로 운동을 하고 싶다고 하며 언덕을 올랐다. 건장한 남자 둘은 빈손으로 기타나 치고 있고 여자 혼자 짐을 다 밀고 있으니 모양새가 웃기기도 했다.


극한 운동 중인 리투아니아 친구

중간에 벤치에서 루벤과 기타를 치면서 리투아니아 친구를 먼저 보냈는데, 그 친구가 그라뇽이라는 마을에 알베르게가 기부제로 운영되면서 아주 좋다고 하며 자기는 그곳으로 간다고 했다. 원래 우리는 산토 도밍고라는 조금 큰 마을에 머물 기로 했었는데 그라뇽은 거기보다 4km 더 떨어진 곳이었다. 루벤은 기부제에 꽂혔는지 나보고 그라뇽까지 가자고 졸랐다.

결국 산토 도밍고를 지나 지친 몸을 이끌고 그라뇽까지 4km를 더 가서 도착했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그라뇽에 베드버그(bad bug : 빈대)가 나왔다는 사례가 많았다. 나는 베드버그에 물려서 자기 입었던 옷들을 전부 빨고 가방을 말리고 했다는 사례를 오다가다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민감했다. 그래서 루벤에게 말했더니 루벤은 어딜 가든 다 똑같을 거라고 운빨이라고 했다. 결국 도착한 그라뇽의 알베르게. 이곳은 고양이들이 많은 한 수도원에서 기부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순례자들은 그 안에서 매트리스를 깔고 자야했는데 깨끗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가 자는 1층은 바닥이 나무가 아니라서 베드버그에 대해 조금 안심을 했다.

위층에 있는 거실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여기에서 다 같이 모여 저녁 식사도 하는 것이었다. 다 같이 모여 식탁과 식사를 차리고 앉았다. 작곡가라고 하신 한국인 아저씨 한 분이 거실에 놓인 낡은 클래식 기타를 들고 존 레논의 ’Imagine’을 불렀는데 아저씨나 사람들이나 후렴구만 아는지 후렴구 때만 크게 불렀다. 아저씨는 나에게도 연주하기를 청하셨는데, 그래서 기타 연주곡 하나를 치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앞에서 연주회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는데. 그래도 떨지 않고 가장 오래 쳐 왔던 코타로 오시오의 황혼을 완주하였다.

여기 알베르게의 봉사자인 두 아저씨와 한 아주머니가 나오셔서 식사 전에 설명과 소감을 전했는데, 수염 나고 덩치가 있는 아저씨는 스페인 어로, 좀 마른 아저씨는 이탈리아 어로, 아주머니는 영어로 설명하셨다. 그리고 식사 전에는 프란시스라는 아저씨의 생일이어서 생일 축하를 하게 되었다(프란시스는 전에 뿌엔떼 라 레이나에서 희태형의 물집을 치료해 주었던 아저씨였는데, 그 후로 만날 때마다 희태형의 안부를 물었다).



세 명의 봉사자가 각각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영어로 설명을 하고 있다.

특별히 이 자리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인 만큼 각 나라의 언어로 생일 축가를 차례대로 부르게 되었는데, 기억해 보자면,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리투아니아어, 한국어, 등등이었다.

화기애애하고 아름다웠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음식이 좀 별로였던 것은 반전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문화를 주고받고 따뜻한 식사를 하는 이 자리만으로 이미 음식의 맛은 중요하지 않았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 함께 정리를 한 다음, 나는 루벤과 맥주를 놓고 수도원 밖에서 기타를 쳤다. 가장 좋아하는 이문세씨, 김광석씨의 노래를 하고 오석준씨의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을 불렀다. 옆에 있던 리투아니아 친구는 한국어로 한국 노래를 부르니 너무 아름답다며 무슨 말인지는 모르나 충분히 그 마음이 전해진다고 했다. 루벤도 노래가 너무 좋았는지 함께 연주하자고 했다.

수도원 밖 돌계단에 앉아 떠 있는 별들 아래서 기타를 쳐도 춥지 않았던 스페인의 가을밤이었다. 이 날 우리는 공기에 떠오른 한국어 노래만으로도 충분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이 정도면 베드버그에 물려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에필로그] 


나헤라를 나와 걷던 길에 펼쳐진 포도밭들

친구들과 함께(안 도와줘서 미안)

음 아무리 봐줘도 그라뇽 음식은 그냥 그랬다

조그만 수도원에서 펼쳐진 위아더월드

고양이들이 함께 있는 밤

[다음 주 계속]

[/사진-강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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