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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강민재의 유럽여행기 #7]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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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언제든지 비가 쏟아질 것처럼 상당히 흐렸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 - 부르고스(Brugos)로 가는 길

- 반갑지 않은 만남, 구스타부(Gustabo) -

 

2016월 10월 12일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좋았던 만남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리스본(Lisboa)에서 온 구스타부와의 만남도 그러한 만남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겠다.

#5 편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구스타부는 빰쁠로나에서부터 계속 봐왔고 나헤라에서는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직접적으로는 만남이 없던 친구였다. 사실 그러기를 내가 바래오기도 했다. 전에도 살짝 언급을 했지만 구스타부는 굉장히 오지랖이 넓었고 말이 굉장히 많은 친구였다. 여기까지는 괜찮다고 해도, 허세 가득한 그의 태도나 욕을 달고 사는 언행은 그를 가까이 하기 싫게 만들었다.

하지만, 루벤과 그라뇽을 나와서 만난 첫 마을에서 우리는 무릎이 아파서 지팡이를 잡고 있는 구스타부와 만나게 되었고, 결국 그가 합류하게 되었다.

오늘 루벤과 목표로 잡은 마을은 비야프랑카 몬데스 데 오카(Villafranca Montes de Oca)였다. 우리는 산티아고 길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인 부르고스에 내일 도착하는 걸로 계획을 했었는데, 여정을 하루 더 단축시키고 부르고스에서 하루를 더 보내자는 목적이었다(아저씨와 희태형도 만날 수 있었다). 비야프랑카는 부르고스에서 40km 지점이었는데, 그 다음 마을까지 가려면 꽤 험한 산을 넘어야 했기 때문에 오늘은 27km를 걸어 비야프랑카까지 가기로 했다.


비야프랑카 전전 마을에서 보았던 표지판. 각 주요 도시들까지의 거리를 표시했다

하지만 구스타부가 끼게 되면서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한 구름 낀 날씨는 둘째 치고, 먼저 구스타부는 무릎이 안 좋아 속도도 느리고 자주 쉬어야 했다. 거기다가 루벤과 둘이 담배 피운다고 멈추기도 부지기수였다.

초조한 것도 그렇지만 구스타부의 언행은 더욱더 거슬렸다. 포르투갈에서는 동양인들을 전부 Chino(중국인)라고 한다며 나보고 Chino라고 부르기도 하고(내가 화를 내자 나중에는 그만 두었다), 자기 형이 특수부대에 있는데 사람을 몇 명 죽였고 자기는 마약 딜러도 했다는 둥의 허세짓을 계속 해대는데 이걸 어떻게 받아줘야 하는지 너무 힘들었다. 심지어는 루벤에게 나치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했는데, 자기는 나치를 한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고 전부 너희 할아버지들이 한 것이니 자랑스럽게 여겨도 된다고 이야기를 했다. 루벤이 침착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아마 주먹이 오갔을 것이다. 루벤은 침착하게 자신들이 직접한 일은 아니지만 독일인들은 모두 그 일에 대해서 반성할 책임을 가진다며 거부감을 나타냈다. 대한민국 또한 2차 세계대전의 피해국이었기 때문에 그 문제에 관해선 루벤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참전하지 않았던 포르투갈 허세쟁이가 그 일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하니 루벤과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가던 도중 루벤의 담배가 다 떨어져 벨로라도(Belorado)라는 마을에서 담배를 사게 되었다. 담배의 엘도라도(Eldorado : 황금의 땅을 일컫는 말)라며 기대에 찬 루벤을 기다려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담배를 사는데 시간이 지체되고 구스타부의 요구로 카페에서 잠시 쉬는데 비까지 오자 초조함이 불어났다. 거기에 더해서 루벤은 비가 오면 자기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 했다(루벤은 비오는 날을 우울하다고 정말 싫어한다). 결국 비가 그칠 때까지 한참을 그 카페에 앉아있어야 했다.

구스타부의 안내로 길까지 잘못 들어서, 결국 길은 찾았지만, 기분 굉장히 안 좋았다. 급한 마음의 루벤과 나에게 구스타부가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면서 가자며 뭐가 그리 급하냐고 하는데, 분명 맞는 말이지만 혈압이 오르는 듯했다.

마을 두 개 정도 지나면 되는 거리였다. 구스타부가 갑자기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울기 시작했다. 무릎이 아픈 것 같았다. 이 마을 알베르게에 넣어주고 떠나고 싶었지만 이 마을 알베르게는 무슨 일인지 열지 않았었고,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애가 불쌍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그 우여곡절 끝에 비야프랑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슨 알베르게 총파업이라도 했는지 시립 알베르게가 문을 닫아서 호텔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머물게 되었다.


고생 끝의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나나 루벤이나 비도 오고 구스타부와의 일정을 소화하느라 기분이 다운 되어있어서 저녁을 먹고 맥주 한 병씩 했는데, 결국 우리는 내일 구스타부보다 일찍 일어나 먼저 떠나기로 했다. 루벤도 어지간히 구스타부가 별로였나 보다. 확실히 40km를 구스타부와 함께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었다. 정말 부르고스에서 구스타부를 다시 안 보았으면 했다.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의 풍경

[다음 주 계속]

[/사진-강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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