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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강민재의 유럽여행기 #8]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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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 - 부르고스(Brugos)로 가는 길 #2

- 고난의 과정을 넘어 -

 

20161013


아마 산티아고 여정 중 가장 고단했던 날이라고 할 수 있는 날로 기억될 하루가 시작되었다. 분명히 루벤과 일찍 일어나 짐을 쌌건만 비가 내리는 것은 둘째 치고 정문이 잠겨서 한 시간이 넘게 지체가 되었다. 거기다가 시작하자마자 돌투성이의 오르막길이라니. 평지에서는 엄청난 기동력을 가지고 있던 유모차였지만 이런 오르막길에서는 쥐약이었다. 루벤과 같이 밀면서 올라가는데 쏟아지는 비 때문에 온 몸이 다 젖어(하나 뿐인 판초는 기타에 양보했다) 추위까지 엄습했다. 아침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배 까지 고팠는데, 다음 마을에서 꼭 따뜻한 아침을 먹기로 하고 그 생각으로 버텼다. 그 마을까지가 12km였다.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면서(한국에 오면 꼭 치맥을 사주겠다고 했다) 산의 오르내리막을 지나던 중, 우리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가이드북에도 이미 나와 있던 지형이었지만 정말 그대로 ‘V’자 계곡인줄은 상상도 못했다.


지옥의 'V'자 계곡을 지나

심호흡하고 도전하는 V자 계곡. 내리막길에서 유모차의 브레이크를 꼭 붙잡고, 바위투성이 오르막길에서는 길게 올라가는 오르막길을 진흙투성이 발로 열심히 올랐다. 다행히 이후로는 별다른 힘든 구간은 없었다.

비가 점점 약해졌는데, 양 쪽에 빼곡한 소나무들이 비에 젖어 특유의 솔내음을 풍겼다. 이렇듯 숲의 상쾌한 향기가 비에 젖어 더욱 자욱했는데, 굉장히 머리가 맑아졌다. 비 때문에 굉장히 기분이 다운되어 있던 루벤에게 이런 좋은 점들을 계속 강조했다. 생각해보니, 비오는 소나무 숲의 모습은 마치 한국의 풍경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숲이 끝나가는 무렵, 통나무들을 조각하고 색칠하여 전시해 놓은 공터가 나타났다. 기괴한 조각들도 있었지만, 여기서 각 나라들까지의 거리를 표시해놓은 이정표도 조각되어 있었다. 이중에 한국도 껴 있어서 반가웠다.

처음 만나는 마을에서 핫초코와 쿠키를 먹으니 배가 차고 몸이 따뜻하게 녹는 걸 느꼈다. 아직 30km정도 더 남은 상황. 배를 적당히 채우고 마을을 나섰다. 나서자마자 우리는 두 갈래 길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이미 가이드북을 통해서 오른쪽 길이 더 빠른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왼쪽으로 가는 것을 봤을 때도 당당히 오른쪽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우리는 가이드북의 갈래 길은 조금 더 가야 나온다는 사실을 5km정도 실컷 떠들며 걷고선 깨닫게 되었다. 가이드북에도 안 나오는 생판 모르는 마을이 나타났다. 구글맵으로 우리가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서 걷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결국 돌아가기보단 구글맵을 보며 차도를 따라 계속 가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부르고스 같이 큰 도시로는 어떻게든 길이 이어지게 되어있었다.


듣도보도 못 한 마을 Barrios de Colina. 여기에는 순례자들도, 편의시설도 아무것도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꽤 긍정적이었다. 하늘도 개어서 파란 하늘 아래, 우리가 새로운 까미노를 개척한다며 신나서 한참을 떠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루벤은 왜 다들 커리어에 목숨을 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나중에 늙어서 후회하는 것보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올인 하는 게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했다. 어쩌면 루벤에게 있어서는 이렇게 세상을 걷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자기가 길을 걷다가 만난 어떤 사람이 해준 말이 너무 인상이 깊어서 항상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빈곤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 적이 있는데,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돈밖에 없었다.”

아스팔트 차도를 걷는 것은 평지라서 어렵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발이 피곤하고 지나치는 차들 때문에 상당히 긴장되어서 피로가 누적되기 시작했다. 날씨도 우리의 기분에 따라 다시 우중충해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공업단지가 있는지 거대한 덤프트럭이 우리 바로 옆으로 쌩쌩 다녔는데, 이게 상당히 긴장되었다.

한참을 걸어 저 멀리 부르고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거의 환호를 질렀고,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을 벗어날 때쯤에 만난 조각들과 표지판들.

어느새 산티아고 길로 다시 합류했는지 노란색 화살표도 다시 보였다. 하지만 갑자기 엄청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비는 우리를 흠뻑 적셨고 방수라 믿었던 내 신발까지도 물로 가득 찼다. 나중에 비가 우박이 되었고 우리는 한 공장의 경비의 배려로 경비실에 잠시 머물 수 있었다. 나와 루벤은 날씨와 각자의 기타가 물에 젖을까봐 상당히 예민했다. 각자 비닐을 씌어두기는 했지만 특히 루벤은 자신의 유모차의 물품들도 젖고 있어서 더 예민해졌다. 다시 출발하고 걷던 중, 루벤이 갑자기 내 기타를 다시 가져갈 수 있겠냐고 했다. 이유인즉 자신의 침낭이 젖는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비 내리는 거리 한복판에서 기타를 받으니 젖을까봐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손에는 지팡이 두 개도 있어서 수습하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루벤은 기타를 내리고 나서 유모차를 끌고 먼저 휑하고 가버렸는데, 그 뒷모습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그 와중에도 마트에 들려서 이따 먹을 와인과 맥주, 그리고 간식을 사기도 했다.

둘 다 예민하고 서로 기분이 안 좋은 채로 부르고스의 알베르게까지 걸었다. 그런데 부르고스가 얼마나 큰지 도시 입구부터 알베르게까지 거의 한 시간을 걸어야했다. 잔뜩 젖고 지친 몸을 알베르게에 겨우 눕혔을 땐 5시가 다 되어 점점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우리가 도착하니 비는 거의 그쳤다. 운도 지지리 없었나보다.

저녁 때 부르고스 대성당에서 큰형님(예전까지는 별다른 호칭이 없었다가 점점 큰형님으로 굳혀졌다)과 희태형을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가웠다. 특히나 한국사람을 제대로 만난 것도 오랜만이었다. 셋이 회포를 풀며 식당에서 빠에야(스페인식 철판 볶음밥)를 먹었는데, 이때 내일 둘을 따라 부르고스를 떠나야겠다는 고민을 했다. 사실 이때쯤에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서 길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컸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단축시키고 싶은 마음이었다. 큰형님, 희태형과도 계속 동행하고 싶기도 했다. 어제 루벤과 하루 더 있기로 했지만 결국, 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지친 나를 조용히 반겨준 부르고스 대성당. 밤의 차분함도 그 웅장함은 가릴 수 없었다.

밤에는 자기 전에 루벤과 맥주를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 내가 내일 떠난다고 하자 루벤은 굉장히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상당히 흔들렸지만 사실 루벤과 나의 걸음이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같이 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날 밤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우리는 웃으며 평소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루벤은 자신의 꿈을 말해줬는데, 그는 세상을 발로 걸으며 가장 많이 걷는 신기록을 깰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도로 러시아에서 스페인에 이르는 길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언젠가는 꼭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루벤에게서 꿈에 가득 찬 표정을 엿볼 수 있었다. 그 꿈이 남들이 보기에는 무모하고 무의미하게만 보일 수 있어도, 걷는다는 그 단순하지만 벅찬 도전이 그에게 어떤 시작일지는 그 자신도 모를 터였다. 그는 돈은 별로 없어보였지만 그 꿈으로 이미 풍족한 사람이었다.

[에필로그]

 

언뜻 보면 한국의 흔한 산책로처럼 보이기도 했다.

 

 

길 옆으로 고개를 숙인 해바라기들이 펼쳐져있었다. 뭔가 굉장히 슬퍼보였다.

 

[다음 주 계속]

[/사진-강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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