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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강민재의 유럽여행기 #10]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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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 - 고요한 메세타에서 나와의 시간

 

20161015

아직 해가 채 뜨지 않은 이른 아침. 언제나처럼 알베르게를 나와 신발 끈을 묶고 하루를 시작했다. 큰형님과 희태형은 먼저 일찍 출발하고 현 누나도 일찍 일어나 카페에서 아침을 먹고 간다고 했다. 오랜만에 혼자 출발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같은 알베르게를 썼던 일본인 여자가 라이트가 없다며 같이 동행하자고 했다. 내가 가진 라이트라고 해봤자 핸드폰 불빛이었지만, 결국 그렇게 오늘은 처음으로 일본인과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언제나처럼 떠오르는 해를 뒤로하듯 온타나스를 떠났다.

일본여자의 이름은 미나코. 생각보다 나이가 많았다. 목소리가 일본인 특유의 하이톤이라서 더 어리게 생각했던 것 같다. 미나코는 일본 훗카이도에서 왔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 중이라고 했다. 나이는 30대 초중반이었다. 다행히 일본인 치고 영어를 잘 해서 말이 통했다. 미나코와 함께 걸으니까 갑자기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던 일본인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후에 미나코와 헤어진 뒤로 일본인들을 한 번도 못 봤던 것을 생각하면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중세에 세워진 수도원으로 지금도 길 위에 고딕양식의 아치가 남아있는 산 안톤 수도원(San Anton)을 지나, 저 멀리 언덕 위에 파르테논 신전을 떠올리게 하는 요새의 폐허가 남아있는 중세도시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에 도착했다. 여기서 아침을 먹을 심산으로 첫 번째로 보이는 카페에 들어섰다. 놀랍게도 희태형이 카페에 혼자 앉아있었다.


아치가 인상적인 산 안톤 수도원.

파르테논 신전 같은 요새가 있는 카스트로헤리스.

희태형은 두 시간 전에 이 카페에 도착해서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고 했다. 희태형은 전에 큰형님과 동행을 시작했을 때는 둘이 어느정도 페이스가 맞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계속 함께 걸었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큰형님을 마냥 따라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발에 무리도 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가다가 발이 아프다는 것을 이유로 큰 형님을 먼저 보내고 혼자 걸었는데 그 순간부터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들어와 카페에서 정리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 말을 하는 순간 현 누나도 카페에 들어왔다.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한 가보다.

나도 희태형과 비슷한 고민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전에 루벤들과의 동행 때도 그렇고 더 전에 브리트니와 클리 등과의 동행에서도 서로의 걸음에 맞추느라 나만의 시간과 생각을 자주 못 하고 혼자 아쉬워했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은 각자의 걸음에 맞춰서 걷기로 하였다. 큰형님은 오늘 35km 떨어진 프로미스타(Framista)라는 마을까지 간다고 하셨는데, 나는 오늘만큼은 적당히 걷고 쉬고 싶었다. 희태형과 현누나도 마음가는대로 할 것이라고 했다.

미나코를 먼저 보내고, 카페를 출발해 카스트로헤리스를 나왔다. 나오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높은 메세타 하나를 넘었다. 거센 메세타 위의 바람은 어제 미쳐 마르지 못하고 내 가방 뒤에 매달려 있는 젖은 수건을 말렸다. 메세타를 넘고 끝없이 펼쳐진 밀밭들 사이를 걸었다. 진지한 미래에 대한 생각, 여자 친구 생각, 쓸데없는 생각, 혼자 소설도 쓰고 아무 생각도 안 하기도 하는 등 머릿속에서는 정돈되지 않은 날 것들이 살아 날뛰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본 카스트로헤리스와 메세타들.

또 하나의 언덕을 넘고 있었다. 저 멀리서 트랙터 하나가 굴러가고 있었고 길 위에는 저 멀리 가방 하나 없이 걸어가는 여자 하나 뿐이 없었다. 절대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길을 걸으며 혼자 크게 노래를 불렀다. 아무 소리나 크게 질러보기도 하고 마치 세상에 나혼자 있는 것처럼 혼잣말도 해보았다.

큰 해방감과 함께 언덕 위에 올랐을 때 내 앞에 펼쳐진 것은 메세타 언덕이 아닌, 저 멀리 끝도 없이 펼쳐진 지평선이었다. 신난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지고 앞서 걸어가던 여자를 지나쳤다. 예상치도 못하게 한국인이었다. 가방도 없이 혼자 조깅 온 것처럼 걸어가는 그 한국 여성분과 짧은 인사를 했다. 프로미스타까지 간다고 했다. 뭔가 다시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분명히 들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들과 씨름하며 오르던 언덕.

그리고 펼쳐진 지평선.

결국 프로미스타까지 갈 생각을 한 것은 단순히 카스트로헤리스 다음의 마을들이 전부 마음에 안 들어서였다. 생기도 없고 유령마을처럼 텅 빈 마을 두 개를 지나치고 오른쪽에 17세기 엔세나다(Ensenada) 후작이 건설한 운하를 끼고 수문들이 아름다운 마을 프로미스타에 도착했다. 수문들을 찍고 싶었지만 갑자기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버려 찍을 수 없었다.

내가 올 것이라고 생각도 못하신 큰형님을 다시 뵙고, 결국 여기까지 온 희태형도 다시 만났다. 현 누나는 전 마을에서 멈추었다고 했다. 아까 길에서 만난 가방 없는 한국 분은 결국 못 만났는데, 다른 한국인 일행들과 저녁을 함께했다. 이럴 때만큼만 기타를 가져온 보람이 있다.

 

 

프로미스타 초입. 옛 운하가 흐르고 있다.

[다음 주 계속]

[/사진-강민재 기자]

※ 연재가 자주 늦어진 점에 대해 죄송한 말씀 드립니다. 앞으로 목요일 당일에 정확히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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