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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강민재의 유럽여행기 #13]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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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 펼쳐진 카스티야 평원. 이제는 지겨울 떄도 됐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 – 끝 없는 지평선 위를 나홀로

 

20161018

오늘도 부지런한 사람들보단 조금 늦은 8, 아침 해와 함께 알베르게를 출발했다. 날이 갠 사아군의 아침은 칙칙했던 어제 오후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작은 강줄기 위에 놓인 옛 로마교를 건너 사아군을 나왔다. 이제는 서술하기도 뭐한 메마른 밀밭과 저 멀리서 지나가는 트랙터, 이름 모를 성당 하나도 지나갔다.




오늘 목적지는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Mansilla de las Mulas). 대략 36km정도 떨어져 있는 곳으로 어제도 거의 40km를 걸었던 것을 감안하면 꽤나 빡센 여정이었다. 그래도 큰형님과 거기서 만나기로 해서 한 번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역시 어제 너무 무리를 했나 보다. 무릎도 아프고 힘이 계속 빠져서 얼마 지나지 않아,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Bercianos del real Camino)라는 마을 초입의 야외 테라스가 있는 바르에서 쉬게 되었다. 여기서 브런치로 토마토 소스를 얹은 바게트와 맥주 한 잔을 먹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많은 순례자들이 내 앞을 지나갔다. 시간은 한 시가 다 되어가는데 아직 반절도 못 온 상태였다. 생각보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만시야까지는 못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바르를 나와 마을을 빠져나가려는데, 내 옆으로 야채와 생선이 잔뜩 그려진 큰 트럭 하나가 다가오더니 귀가 터질 정도로 클랙슨을 울려 댔다. 트럭 안에는 건장한 두 남자가 타고 있었는데, 아마 마을에 장사를 하러 온 모양이었다. 시간대가 또 시에스타(siesta : 스페인의 오후 낮잠 시간)이다 보니 사람들을 깨우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민폐가 또 있나. 더 대단한 건 그 트럭이 온 마을을 가로지르며 소음을 만들어내는데도 아무도 나와서 뭐라고 하지 않은 거였다.


잠시 쉬어 간 베르시아노스의 바르.

쫓아오는 트럭을 피해 서둘러 마을을 나왔다. 양떼를 모는 양치기와 말들을 지나쳐 도착한 마을은 엘 부르고 라네로(El Burgo Ranero). 사실 당장 여기서라도 쉬고 싶었지만, 이 마을의 모든 알베르게에 베드버그가 들끓는다는 소식을 다른 순례자들로부터 들어서 이곳을 지나치기로 했다. 일단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에 잠시 바르에 들려 점심을 먹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마을을 나섰다. 나서면서 햄누나와 희태형한테 이 마을에 머물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서 원래 목적지였던 만시야 까지는 19km가량. 큰형님이 아주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해서 꼭 도착하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몸 상태도 그렇고 시간도 충분하지 않아서 12km 떨어진 그 전 마을인 렐리고스(Religos)에 머무는 것도 고려를 해봐야 했다.

구름이 좀 끼어 있었지만 해는 밝았다.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지는 도로 옆을 하염없이 걸었다. 마을도 건물도 하나 없이 나무 조금과 바람에 날려 이따금씩 내 얼굴과 옷에 들러붙는 거미줄만이 계속되었다. 저 멀리 지평선 끝에 걸쳐 기차 하나가 지나가는데, 마치 풍경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연상시켰다(사실 나중에 보니 그리 비슷하게 생기지는 않았었다). 작은 언덕을 오르면서 이것만 오르면 이제 마을이든 뭐든 보이겠지 하며, 이 감동적인 순간을 담기 위해 영상을 찍으면서 올라갔다. 그리고 또 다른 지평선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정말로 오랜만에 저 멀리 산맥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지평선이 아닌 산맥이라니. 곧 이 심심한 평원을 벗어날 것이라는 생각에 희망이 아주 조금 생기기는 했다.


바다처럼 넓게 펼쳐진 지평선을 바라보자면 숨이 턱 막혀온다.

노래를 들으며 혼자 걷는 길. 옆에 도로로 승용차 한대가 빠르게 지나갔다. 아마 내가 1시간 넘게 갈 길을 저 차는 15분이면 가려나. 하며 부러운 마음이 살짝 들기도 했다. 잘 닦여진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는 차와 나의 경주. 근데 내가 이 경치를 걸으며 노래 한 15곡을 들을 때, 저 차는 한 3 곡 정도 들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자. 어쩌면 이 길을 걷는 다는 것이 저 사람에 비해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래도 똑 같은 풍경만 두 시간이 넘도록 계속 되자, 이제는 혼자만의 생각도 지겨워지고 몸도 점점 지쳐갔다. 물도 다 떨어져서 보이는 벤치에 그대로 앉았다. 문득 뒤따라오는 햄누나와 희태형이 궁금해졌다. 연락을 해보니 얼마 차이가 안 나는 것 같아서 벤치에 앉아 쉬며 둘을 기다렸다. 30분쯤 기다렸나. 저기 멀리서 가로수에 잔뜩 붙어있는 거미줄을 피해 차도를 따라 걸어오는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희태형의 물을 얻어 마시고, 사진 몇 장을 찍으며 쉬다가 출발했다. 조금만 가면 렐리고스가 있을 터였다.

처음에는 베드버그가 나올까 무서운 이 조그만 마을을 지나쳐 만시야까지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도저히 몸이 허락하지 않았고, 해도 서서히 지고 있어 결국 큰형님께 연락을 드리고 렐리고스에서 멈추게 되었다. 그래도 기분 좋은 건 희태형의 음식을 한번 더 맛볼 수 있다는 거였다. 셋이 함께 장을 봐서 햄야채볶음과 고추장마늘파스타를 만들었다. 파스타는 이번엔 희태형의 코치로 내가 만들었는데, 꽤나 맛있는 게 나왔다. 순례를 마치고 좋은 사람들과의 맥주를 곁들인 식사는 하루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카스티아 이 레온(Castilla y Leon)주의 주도인 레온(Leon) 입성을 하루 남겨두고 있었다.

[에필로그]


햄누나가 찍어준 사진. 뒤에 옥수수밭이 아름답다.



렐리고스 마을 초입. 늦은 시간이라 해가 지고 있다.

[다음 주에 계속]

[글/그림 : 강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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