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청년 강민재의 유럽여행기 #14]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에 가다
기사수정


아름다운 레온의 구시가지 모습.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 – 사자의 도시 레온(Leon)

 

20161019

이 길을 걷기 시작한지도 어언 17일 째. 평균 25km 정도를 걸으며, 지친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도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다. 언젠가는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마을이나 도시에서 편안하게 하루를 더 보내야겠다 생각했었는데, 레온이 바로 그 도시가 되었다.

어제 너무 피곤했었는지, 알베르게 봉사자 아저씨가 부르는 소리에 일어났을 때는 이미 다들 떠나고 난 뒤의 9시였다. 나도 서둘러 짐을 싸서 나왔다. 오늘 레온까지 24km를 가려면 상당히 늦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미 예상치 못한 일들에 익숙해진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먼저 일찍 떠난 햄누나의 문자를 확인해보니, 둘이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길을 걷던 도중에 큰형님을 만나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왔었다.

어젯밤 큰형님이 묵으셨던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Mansilla de las Mulas)라는 아름다운 작은 마을을 지나고, 비야모로스 데 만시야(Villamoros de Mansilla)라는 작은 마을을 통과해, 강 건너 바로 있는 뿌엔떼 비야렌떼(Puente Villarente)라는 마을의 엘 오르노 데 엘라디아(El Horno de Eladia)라는 작은 빵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게 되었다.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의 풍경.

노란색 커스타드 크림 두 덩이가 올려진 먹음직스러운 패스츄리와 생맥주 하나를 먹었다. 그런데, 그 커스타드 패스츄리가 너무 맛있어서 하나를 더 먹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안 멈췄으면 큰일날 뻔했다.

길은 계속 이어지고 도로를 옆으로 살짝 벗어난 길로 빠져 걸었다. 밀밭 사이를 걸어 경사를 좀 올라가는 아르카우에하(Arcahueja)라는 마을을 지났다. 언덕 하나를 더 올라가고 나서 큰 길가와 이어졌는데, 저 멀리 드디어 레온이 보였다.


언덕 사이로 멀리 보이는 레온.

누군가 순례자들을 위해 마련한 아이스박스 속의 음료수를 하나 집어 마시며 레온에 입성했다. 부르고스 때와 마찬가지로, 레온에 들어섰다고 끝난 것이 아니었다. 숙소는 레온 대성당이 있는 구시가지 중심까지 가야했는데, 신시가지를 30분 정도 더 지나야했다. 엔티크한 구시가지 골목들을 걷다가 그 사이에 거대한 레온 대성당이 보였다.

넓은 광장 한가운데에 두 개의 큰 첨탑이 솟은 고딕양식의 레온 성당이 서 있었다. 역시 대성당이라는 부르고스 성당은 이렇게 자세히 보질 못해서 큰 감흥이 없었지만, 벌건 대낮 넓은 광장 한 가운데의 하얀 레온 대성당은 정말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골목 사이로 보이는 레온 대성당.

숙소는 그 레온 성당에서 몇 걸음 정도 떨어진 꽤 번화한 길가의 아파트에 있었다. 알베르게에서는 하루 이상을 지낼 수 없는 규칙이 있기 때문에 나는 지인이 추천해 준 호스텔을 예약했었다. 이름은 레온 호스텔. 사자를 뜻하는 레온이라는 도시 이름답게 사자가 누워있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자, 좁은 로비가 나왔는데, 좁게 올라가는 계단 중간 빈 공간을 활용한 아주 좁은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아마 이 건물이 옛날 건물이기 때문에 나름 리모델링을 한 것 같았다.

체크인을 하고 호스텔 거실에 들어서니 큰형님, 햄누나, 그리고 희태형이 먼저 도착해 푹신한 소파에 앉아 맥주를 한 잔씩 마시고 있었다. 나도 드디어 한 숨 돌리며 짐을 풀고 도착한 기념으로 맥주를 마셨다. 희태형이 와인도 꺼내왔는데, 거리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창가 쪽 선반에 와인 잔을 놓자 햇빛도 들어오며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아직 나 빼고는 다들 내일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희태형은 나처럼 레온이 마음에 들었는지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옆에서 내가 계속 꼬드기기는 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이미 희태형은 레온의 매력에 빠지고 있었다.저녁거리를 사러 희태형과 거리로 나왔다. 레온은 생각보다 규모가 큰 도시였는데, 유서 깊은 옛 건물들이 여기저기 있었고, 심지어는 스페인의 스타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가 지은, 현재 은행 건물로 쓰이는 건물도 있었다.


활기찬 레온의 오후.

처음에는 중국인 마트에서 한국 라면과 쌀을 사려했는데, 결국 헤매다가 못 찾고, 현지 마트에서 스테이크 고기와 돼지목살, 상추대신 양배추, 그리고 인스턴트 밥을 사서 돌아왔다. 오늘도 희태형의 음식 솜씨를 볼 수 있는 날이었다.

핸드폰으로는 재즈를 틀고 잔잔한 조명에 고기와 와인을 곁들이고(햄누나의 고추장도), 거기에다 창밖의 아름다운 레온 거리가 한쪽면을 장식하니, 이만한 분위기도 없었다. 오늘은 투숙객도 거의 없어서 거의 우리가 전세 낸 것 같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대성당이 있는 광장에 맥주 하나씩 들고 나갔다. 마침 대성당에서 무슨 행사가 방금 끝났는지 대문이 활짝 열려있었는데, 그 안에 큰형님, 희태형, 나까지 셋이 들어가보았다. 지금은 어두워서 잘 안 보이지만 빛이 비춘다면 분명히 아름다울 스테인드글라스와 웅장하고 섬세한 성당의 그 특유의 고요함이 나를 압도했다.

이렇듯 내게 있어 레온은 산티아고 만큼이나 의미있는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레온 대성당의 야경.

대성당의 내부 모습.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다.

[다음 주에 계속]

[글/사진 : 강민재 기자]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koreafrontier.com/news/view.php?idx=10338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