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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강민재의 유럽여행기 #15]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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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하면 생각나는 색은 언제나 붉은 색이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 까미노 (Camino) 레온 두번째 날의 추억

 

 

20161020

큰형님과 햄누나는 아침 일찍 알베르게를 떠나고, 희태형과 나는 하루를 더 머물게 되었다. 그 기념으로 오랜만에 더 잘 수 있었다. 레온 호스텔은 그 아늑하고 깔끔한 시설에 비해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하긴, 하루 더 지낼 것이 아니라면 굳이 여기서 머물 이유도 없긴 했다). 덕분에 희태형과 나는 오늘도 호스텔을 우리 집처럼 쓸 수 있었다.

집 앞에 바로 프랑스 식료품점인 까르푸가 있었기 때문에 저렴한 값에 음식을 살 수 있었다. 사실 가까이에 스페인 식료품 마트인 ‘DIA’가 있었다면 거기로 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까르푸는 물가가 비싼 프랑스의 마트인지는 몰라도 DIA보다 물가가 살짝 더 비싼 편이었기 때문이다. 아침으로 빵과 샐러드를 사서 먹었다. . 빵도 현지 마트인 DIA가 더 신선하고 맛있는 것 같다.

오늘은 희태형과 어제 찾지 못한 중국인 마트를 가서 한국라면을 사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지난번 까리옹에서 망가져버린 이어폰도 새로 사기로 했다. 방에서 좀 쉬다가 점심 전에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맑았던 어제 날씨와는 달리 살짝 구름이 껴있었는데, 따라서 어제와 같은 아름다운 인상은 살짝 덜 했다. 어제 중국인 마트를 찾으러 갔다가 발견한 아울렛에 가서 이어폰을 사려했다가 허탕을 쳤다. 스페인이 아쉬운 점은(다른 유럽도시들도 거의 마찬가지였지만), 대형마트 같은 곳은 주로 도시 외곽에 자리한 것이다. 결국 이어폰이 있을 법한 곳은 20분 정도를 더 걸어가야 있는 백화점밖에 없어 이따 저녁에 가기로 했다.



오늘따라 흐려진 날씨가 아름다운 거리를 뭔가 우울하게 장식했다.

 

레온의 옛 중세 성벽.

한참을 또 걸어 드디어 도착한 중국인 마트에서 우리는 신라면을 구할 수 있었다. 오늘 분과 내일 분까지 5봉지를 샀다. 더 사고 싶었지만 가격이 싸지 않았다.

점심거리를 더 마련하기 위해서 구시가지를 돌다가 스페인식 햄인 하몽(jamon)들이 잔뜩 걸려있는 와인샵에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서 레온지방의 치즈와 하몽, 그리고 와인을 사게 되었다. 주인 아줌마 아저씨가 계속 시식용으로 후하게 주시는 와인과 햄을 우리가 너무 맛있게 먹자, 기분이 좋으셨는지 햄도 많이 주시고 염소치즈까지 주셨다. 레온 인심도 꽤나 좋은 것 같았다.





라면과 와인 치즈라는 조합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희태형은 낮잠을 자고 나는 여자친구에게 엽서를 보내기 위해 광장으로 나갔다. 엽서를 사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민재하고 불렀다. 광장 벤치에 루벤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가 너무 반가워 서로 안부를 물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들도. 루벤과 더 긴 이야기는 이따 저녁에 하기로 했다. 나는 6시쯤에 희태형과 레온 성당 미사에 참석하려고 했는데, 루벤도 가겠다고 했다. 알베르게로 돌아가는 루벤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레온 성당이 나를 마주보고 있는 광장 벤치에 앉아 레온 성당이 그려진 엽서를 썼다. 스스로도 이런 낭만이 없다고 생각했다. 엽서 내용도 그만큼 낭만적이었을까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레온 성당이 내려다 보는 그 광장.

엽서를 보내기 위해 거리를 한참 가로질러 우체국에 다녀오니 벌써 시간이 6시가 다 되었다. 희태형을 깨우고 레온의 미사에 참석했다. 나는 성당 본당에서 할 줄 알았는데, 본당이 아니라 성당 뒤편의 별채에서 했다. 본관은 관람 목적으로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뭔가 성당의 주인이 자본주의에게 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고요한 별채에서의 미사. 아는 얼굴들도 많았다. 순례길을 걷고 있는 신부 한 분이 사제복으로 갈아입고 레온의 신부님과 함께 미사를 진행했다. 그 신부님을 알고 있던 희태형이 평소 그 먼지 가득한 옷이 아닌 사제복을 입으니까 사람이 달라 보인다고 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성당에 들어가면 마음이 항상 편안해진다. 고요하고 따뜻한 공간에서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옛 중세, 근대 사람들과 같은 공기와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루벤은 미사에 오지 않았다.


웅장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고요한 기도시간.

미사 후에 희태형과 이어폰을 사기 위해 도시 외곽의 백화점까지 걸어갔지만 허탕을 치고 골목 가게에서 싸구려 이어폰 하나 사서 왔다. 얻은 것이라곤 오랜만에 KFC를 먹었다는 것(KFC도 한국 것과는 많이 달랐다. 치킨 텐더같은 스타일?).

그래도 어둠이 벌써 내려앉은 낮선 레온 옛 골목들을 지나는 것도 다 낭만이었다. 저녁 때라 사람들이 야외 테라스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스페인 전통 복장 비슷한 것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은 밥 먹다말고 기타와 여러 악기들을 연주하며 레온 밤 골목을 특유의 스페니쉬 하모니로 물들였다.



그 감성 그대로 우리는 숙소에 돌아와 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창가에 앉아 와인을 마시고 소파에 앉아 이 길을 걸으며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공유했다. 그때 나누었던 대화들을 다 쓰기에는 너무 길어 못 쓰겠지만 지금까지 썼던 글들 사이사이에 전부 있는 내용들이다.

어느새 우리의 산티아고까지의 여정은 반절도 채 남지 않았다.


레온에서의 마지막 밤.

[다음 주에 계속]

[글/사진 : 강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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