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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강민재의 유럽여행기 #16]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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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렇게 익은 옥수수밭 사이에 이정표가 서 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 까미노 (Camino) 기사들의 마을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

 

20161021

산티아고 길 800km를 매일같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완주한다면 당연히 뿌듯할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가벼운 마음으로 주변 풍경을 마음껏 즐기고 싶은 날도 있는 법이다. 특히 어느새 점점 애물단지가 되어 가는 나의 기타에게도 연주 당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했다. 이틀 동안 정들었던 레온을 떠나는 날. 희태형과 나는 동키 서비스라는 짐 배달 서비스를 처음 이용했다.

꽤 귀여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 동키 서비스는 무거운 짐을 다음 목적지까지 배달을 해주는 서비스로 평균 5유로 정도 든다. 각 마을의 알베르게에 문의하면 이용할 수 있는데, 수도원 같이 순례자의 고행을 장려하는 보수적인 알베르게에서는 운영을 안 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이틀 만에 다시 시작된 순례길. 희태형과 함께 가벼운 몸으로 정든 레온을 나섰다. 레온 주변부 마을들을 몇 개 지나고 다시 스페인의 한적한 시골이 펼쳐진 곳으로 들어섰다. 오전쯤에는 날씨가 살짝 흐렸는데, 걸으면서 기타를 치려고 해도 쌀쌀한 날씨에 손가락이 얼어서 칠 수가 없었다. 아쉽게도 기타는 몇 번 치다가 넣어둘 수밖에 없었다.

길을 가다가 조그만 마을 하나 벤치에서 아까 전에 샀던 살라미와 맥주, 그리고 감자칩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어느새 풍경들이 많이 바뀌고 있었다. 끝도 보이지 않던 누런 밀밭도 이제는 보기 힘들었고, 키 큰 나무들도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이쪽은 옥수수 밭이 많았다.

가방 없이 걸으면서 느끼는 것은 굳이 가방을 보내지 않아도 발 아픈 건 똑같다는 것이었다. 이젠 어느새 가방이 없는 게 어색해져 버렸다. 물론 걸으면서 기타도 치고 움직임도 자유로웠지만, 역시 가방을 메고 걷는 게 더 묘미가 있었다.

산 마르틴 델 까미노(San Martin del Camino)에서 순례자 식사로 빠에야를 먹고 나니 어느새 날씨가 맑아져 강한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제 기타를 꺼낼 때가 되었다. 옥수수 밭이 양옆으로 펼쳐진 차도 옆으로 난 길을 걸으며 희태형과 같이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불렀다. 한국에서 그랬다면 그만한 궁상도 없었겠지만 이곳 스페인의 카스티야 평야에서는 가능했다.



키 큰 옥수수줄기에 노랗게 익은 옥수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로 서리를 하고 싶었지만 사실 가져가서 쪄 먹을 만큼 그 때는 부지런하지가 않았다. 그래도 한 번 먹어볼 걸 그랬다.



젖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푸른 밭이 펼쳐진 곳들을 지나 옛날 로마 다리의 이름을 따서 뿌엔떼 데 오르비고(Puente de Orbigo)라 불렸지만 지금은 다리 건너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와 합쳐진 마을로 들어섰다. 그리고 마을을 가로질러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와 이어지는 길고 아름다운 오르비고 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르비고 다리는 옛 로마인들이 지은 다리로 중세 때 증축이 되었다고 한다. 수 십개의 아치가 인상적인 이 다리는 사람들이 명예의 통로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이 다리에서 중세의 한 기사가 사랑하는 귀부인에게 구애하기 위해 300명의 기사와 결투를 벌였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매년 6월 초에는 이곳에서 그를 기념하는 마상경기를 한다고 한다. 또한 이 기사의 이야기는 세르반테스(Cervantes)의 소설 돈키호테(Don Quixote)에도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뿌엔떼 데 오르비고에서 바라본 오르비고 다리와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의 모습.

명예의 통로라고도 불리는 기사들의 다리인 오르비고 다리.

옛 기사들의 다리를 건너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에 들어섰다. 아름다운 중세풍의 마을 오르비고는 그 고요함으로 우리를 반겼다. 몇 몇 학생들과 아이들이 놀고 있었지만 마을은 정말 한적했다. 어떻게 보면 심심한 시골마을 같기도 했지만 옛 중세 기사들의 기품이 그 차분함 속에 녹아 있는 듯 했다. 우리는 시립 알베르게에서 짐을 찾고 저 스페인의 유명한 맥주 이름과도 같은 산 미겔(San Miguel)이라는 알베르게가 좋다는 정보를 얻어서 그곳으로 갔다.

산 미겔은 정말 특색이 있는 알베르게였다. 내부에 많은 순례자들이 직접 그려 남긴 그림들과 순례 기념품들, 그리고 중세풍의 노래들이 중세마을 오르비고스러움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저녁으로 희태형과 마트에서 닭을 사고 어제 산 라면과 여러 가지 재료들을 가지고 닭볶음탕을 만들려고 했지만 닭볶음탕이 아닌 어떤 음식이 되었다. 그래도 이 나라가 닭 자체가 아주 맛이 좋았고 희태형의 노력으로 괜찮은 음식이 되었다. 옆에 대만 친구 둘이 있었는데 먹으려 하지 않았다.



중세의 낭만이 숨 쉬는 오르비고에서의 하루가 다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드디어 끝도 없을 것 같던 지평선도 끝이었다.

[다음 주에 계속]

[글/사진 강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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