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청년 강민재의 유럽여행기 #17]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에 가다
기사수정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 까미노 (Camino) – 안개비

 

우리의 일상은 불확실들로 가득하다. 특히 집을 떠나 머나먼 스페인의 시골길 한가운데를 걷고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나는 길 위나 돌 위에, 또는 나무 등에 그려진 노란색 화살표에 나의 모든 확신을 맡겼다. 그럼에도 정신차려보니 화살표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조용한 숲 한 가운데에 덩그러니 서 있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시작은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아침에 시작되었다. 희태형을 먼저 보내고 언제나처럼 천천히 나선 길. 어두운 시골 밭 사이를 지나고 조그만 마을들을 지나 언덕들을 오르내리다보니, 매일 그렇긴 하지만, 함께 출발했던 사람들은 전부 어디 갔는지 몇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생장부터 같이 걸어온 이탙리아 부부 정도였다.


오늘따라 언덕 길이 많았다.

귀여운 송아지가 있는 축사를 지나 언덕을 넘어 혼자서 이러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조용한 숲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뒤를 보니 이탈리아 부부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노란색 화살표를 계속 찾아봤는데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의 나 같았으면, 이러한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당황하고 불안해하며 패닉에 빠졌을 것이었다. 하도 걱정이 많은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길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항상 예상치 못한 일들을 달고 살아오며 이미 대처하는 능력이 많이 생긴 듯했다. 핸드폰 지도를 보며 다시 산티아고 길로 이어지는 길을 찾았다. 등산화들의 발자국이 많고, 배낭을 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이 길이 분명했다.

언덕을 지나다보니 곧 돌로 만든 십자가가 보이고, 그 뒤로 고딕 양식의 두 첨탑이 우뚝 서 있는 소도시 아스토르가(Astorga)가 보였다. 요새 자주 변덕스러운 하늘이 흐린 것이 곧 비가 올 듯했다.


커다란 돌 십자가 뒤로 멀리 아스토르가가 보인다.

돌 십자가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이곳 주민으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내 기방에 있는 기타를 보더니 연주하달라고 하셔서 갑작스럽게 야외 공연을 하게 되었다.

아저씨와 작별을 하고 내려와 아스토르가 전 마을을 지나는데,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지난번 온타나스에서 우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기타를 쌀 만한 게 없었다. 결국 내 후리스를 벗어서 기타를 싸고 계속 길을 걸었다. 도중에 비가 너무 많이 오기에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기도 했다. 정성도 지극이다.

기찻길을 지나 진입한 아스토르가는 역사가 깊은 도시였다. 옛날 도대 켈트인들이 처음 이곳에 정착하고, 후에 로마인들이 들어와 기원전 14년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이름을 따서 아스투리카(Asturica)라는 도시를 만든 것이 시초였다. 거리로 진입하자마자 옛 로마인들의 집터 유적을 볼 수 있었다. 비도 오고 정신이 없어서 살짝 빨리 지나치기는 했지만 시청건물이나 광장, 그리고 구시가도 굉장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스토르가 마요르 광장(Plaza de Major)의 시청사.

중국인 마트에서 값 싼 우비 두 개를 사서 하나는 기타를 싸고 하나는 내가 입었다. 춥고 배도 너무 고파 이 도시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길을 가다보니 1471년부터 짓기 시작해 3백년이 걸려 18세기에 이르러 완성했다는 산타 마리아(Santa Maria)성당과 그 옆에는 레온에서도 보았던 건축가 가우디의 건축물인 주교관 건물이 보였다. 가우디의 건축물은 굳이 주의 깊게 보지 않았지만, 산타 마리아 성당은 레온 대성당보다는 작지만 비슷한 모습 때문에 눈길이 갔다. 특히 그 세밀한 파사드(성당의 전면부)가 감탄을 자아냈다.


가우디가 지은 주교관 건물.

골목 사이로 보이는 산타 마리아 성당.
성당 앞의 한 바르에서 파스타로 점심을 해결하고 계속 길을 걸었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었다.

도시를 나와 다시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이런저런 마을들을 지나니 점점 고도가 높아지고 산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제는 푸른 잎을 가지고 있는 풀들과 나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마을들은 굉장히 작은 규모로 몇 개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도시로 많이 빠져나가고 있는지 무너지고 버려진 집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 모습들이 안개 흐린 날씨아래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걷다가 심심해서 지난번에 레온에서 샀던 싸구려 이어폰이 생각나 오랜만에 노래 들으면서 걷고 있었는데, 손에 걸려 한 번 길에 떨어졌는데 바로 박살이 났다. 이어폰 팔던 청년 말로는 아이폰 이어폰보다 훨씬 좋은 거라고 했는데.

끓어오르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스피커로 노래를 들으면서 언덕길을 걸었다. 길 왼쪽으로는 안개 사이로 송전탑들이 이어졌고, 긴 마른 풀들 사이로는 이름 모를 보라색 꽃들이 거미줄과 이슬을 머금고 있었다. 듣고 있는 노래와 맞게 꽤나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안개비 속에서 걷다보니 아까와는 다르게 두려움이 엄습했다. 특히 산길로 접어드는 곳에서는 오른 편에 철조망이 쳐져있고 거기에 나뭇가지들로 조잡하게 만들어 놓은 십자가들이 가득했는데, 무슨 철조망 너머로 깨우지 말아야할 것이라도 봉인한 것 같이 보여서 무서웠다. 철조망 너머에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늑대라도 나올 것 같아 결국 차도 쪽으로 나와서 걷게 되었다.


안개 송으로 송전탑들이 이어져 있다.

이름모를 보라색 풀들이 여기저기 자라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니 저 멀리 안개 속에서 큰 개가 한마리가 마중 나와 짖기 시작했다. 개도 무섭긴 했지만, 늑대보다야 나았다. 드디어 산 밑의 작은 마을인 라바날 델 까미노(Rabana del Camino)가 안개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기부제로 운영되는 알베르게에 들어가니 희태형을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놀랍게도 예전에 까미노를 시작하기 전, 빰쁠로나에서 우연히 자게 되었을 때 만나 내 기타 연주를 들려주고 영어를 못하셔서 손짓발짓으로 대화했던 브라질 아저씨를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아저씨가 나보다 4일은 더 앞서 갔으니 나도 참 빨리도 걸었다.

벽난로 앞에 기타를 말리고 미국인 여자애, 또 다른 브라질 젊은 친구들과 상그리아를 마셨다. 여기에서도 기타 한 번 치니까 인기쟁이가 되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내일은 산티아고 길에서 가장 고도가 높다는 산을 올라가야 했다. 사실 나는 첫 날 넘었던 피레네 산맥이 제일 높은 건줄 알았다.

[다음 주에 계속]

[글/사진 강민재 기자]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koreafrontier.com/news/view.php?idx=10372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