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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강민재의 유럽여행기 #19]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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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 까미노 (Camino) 베드버그 소동

 

20161024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아마 나와 같은 경험을 당한 사람들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 악명이 아무리 자자하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당해도 내가 베드버그(bedbug)에 물릴 줄을 어떻게 알았을까.

때는 모두가 한창 자고 있을 3시 경이었다. 잠에서 깨었을 때, 쇄골 부분에 화끈 거리며 따가운 통증에 화들짝 일어났다. 그 순간 바로 머릿속에 떠올린 건 바로 베드버그. 즉 빈대였다.

베드버그는 침대 밑에 주로 사는데 까맣고 아주 작다. 이들은 천을 좋아해서 옷이나 이불 등으로 들어가며 번식하기 때문에, 한 마리가 발견되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천 재질은 세탁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 친구들이 더 무서운 것은 모기처럼 한 군데를 집중적으로 공략하지 않고, 조금씩 여러 군데를 기어 다니면서 물고, 처음에는 괜찮은 것 같다가 나중에 부어오르며 엄청난 가려움과 통증을 동반 한다고 한다.

화장실에 가서 보니 정말 일렬로 뭔가에 뜯긴 듯한 상처 나 있었다. 물로 씻으니 정말 따가웠다. 방에 돌아와서 침낭이랑 침대를 불로 비춰 보니 침대에 작은 벌레 하나가 기어 다니는 것을 보고 바로 손가락으로 눌러 죽였다. 이 베드버그 안 물리려고 지금까지 매일 가는 곳마다 침대를 이리저리 들쳐봤는데, 어제 하루 안 봤다고 나타난 것이다.


빈대가 남기고 간 상처.

일단 짐들을 전부 거실로 소파로 옮기고 가방에 있던 모든 천들을 꺼냈다. 그리고 내 밑 침대에 자고 있던 다이아나를 깨웠다. 베드버그에 물렸다고 너도 조심하라고 하자, 다이아나는 너무 졸렸는지 이걸 써보라며 자기가 가지고 있던 버그 스프레이를 주고 다시 잠에 들었다.

옷가지들과 침낭을 빨기 위해 밑으로 내려갔는데, 웬걸 세탁실 문이 잠겨 있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못 하고 갈팡질팡 하고 있다가, 2층 거실 저쪽 편에 알베르게 자원봉사자들이 자고 있는 방이 있는 것을 보고 가서 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다시 몇 번 더 두드리자 늙은 노인 하나가 나왔는데, 내가 새벽에 깨워서 기분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도 이들의 부주의로 숙소에서 발생한 베드버그 때문에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아 있었다. 스페인어 사전을 찾아가면서 베드버그에 물렸다며 상처도 보여줬지만 노인이 계속 아니라고 우기며 빨래방도 열어줄 수 없다고 하자 너무 답답했다. 노인이 손사래를 치며 문을 닫아버리자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순례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자기네 숙소에서 베드버그 물렸다는 사람에 대해 아무 조치도 안 해주다니. 나중에는 다시 거실로 나오더니 내가 앉아있는데도 불을 꺼버렸다. 나도 화가 나서 소리 나게 불을 켰다. 그러자 노인이 다시 나와서 불을 껐다. 그러자 결국 욕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다시 불을 키자 이제는 포기했는지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거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5시쯤이 되자, 영어가 통하는 자원봉사자가 나왔다. 그는 세탁실을 관리해주는 사람이 10시에 깨기 전까진 열어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커다란 비닐봉지에 옷을 모두 넣고 그걸 가방에 얹어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날 받아주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이 모습으로 도착지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다른 알베르게에 가서 세탁을 부탁했지만 퇴짜를 맞고, 결국 그 상태로 출발했다. 약국에서 베드버그 물렸을 때 바르는 연고를 바르고, 좋지 않은 기분으로 해도 뜨지 않은 폰페라다를 뒤로했다. 오늘은 상당히 일찍 출발하게 되었는데, 그 덕에 사람들도 없고, 어두워서 길을 잘못 든 것 같았다. 그래도 핸드폰 지도를 의지하여 길을 찾아 가기 시작했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가게들이 문을 안 열어서 배도 고프고 피곤했지만 조금 더 가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소도시 폰페라다를 나서서 큰 차도를 따라 다음 마을인 캄포나라야(Camponaraya)로 향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만남을 하게 된다.


캄포나라야의 포도농장 모습.

[다음 주에 계속]

[/사진 강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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