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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강민재의 유럽여행기 #25]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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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 까미노 (Camino) 어쩌다가 산티아고

 

20161029

이른 아침 희태형이 가장 먼저 출발하고, 햄누나와 나도 곧 출발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제처럼 어두웠지만 햄누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참 대화를 하며 숲과 목장 길을 걸었다. 햄누나는 생각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 누나였다. 그래서 같이 이야기하다 보면 대화할 거리들이 많아서 시간이 훌쩍 훌쩍 지나갔다.

걷다가 인근 카페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는데 걸음이 더 빠른 내가 더 앞서 갔다.

 

이른 아침의 목장.

어느새 두 자리 대 숫자가 된 산티아고까지의 거리. 목적지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들수록 왠지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은 급해졌다. 한 달 내내 이 긴 길을 걸어오면서 몸도 마음도 어느새 지쳐있었던 걸까. 아니면 빨리 그 마지막 장을 보고 싶었던 호기심 섞인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지방들에 비해 유난히 실망스러웠던 갈리시아가 지겨워서일까. 걷는 내내 복잡한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교차했다. 오늘 따라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이었다. 어느새 예전처럼 사진 찍는 일도 거의 없이 그저 걸을 뿐이었다.

 

이곳저곳 낙서와 쓰레기가 쌓여있는 석주.

 


갈리시아의 전형적인 창고. 안에 옥수수가 쌓여 있다. 당시의 복잡했던 마음을 대변해 주듯, 사진첩에는 이렇게 쓸데없는 사진만 남아있었다.

마을들을 지나고 숲들을 지났다. 산티아고 공항을 우회하는 길을 따라 걷는데 비행기의 이륙하는 소리가 소란했다. 정말 산티아고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이었다. 그것을 반증하듯 숲길 이곳저곳에 순례자들이 자신들이 입거나 쓰던 물품들을 기념으로 잔뜩 버려놓은 것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뭐 문화차이도 있겠지만 내 눈에는 환경파괴로 보였다.

대도시의 외각이라 그런지 마을들은 대부분 단독주택 형식의 현대 건물들이었다. 어느새 익숙해졌던 중세적인 느낌은 많이 사라져있었다.

지금까지 걸어오며 만나고 같이 걸었던 익숙한 사람들은 이젠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처음 보는 얼굴들. 이곳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낯설음으로 다가왔다.


정말로 산티아고에 다왔나 보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실망감들은 몬테 도 고조(Monte do Gozo)에 올랐을 때의 실망감만큼은 아니었다. 밑을 바라다보면 산티아고의 모습이 넓게 펼쳐진다는 몬테 도 고조. 나는 노을이 지는 산티아고의 야경을 바라보며 다음 날 편안한 마음으로 산티아고에 입성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몬테 도 고조 위에서는 막상 나무들에 시야가 가려 산티아고가 드문드문 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 산티아고라는 것도 내가 생각했던 웅장한 성당이 있는 중세 도시가 아닌 평범한 현대식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성당을 보려면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 같았다.


실망스러웠던 산티아고와의 첫 만남. 그곳은 내가 바랐던 특별한 웅장함이나 성스러움보단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도시일 뿐이었다.

이런 실망감들이 결국 나를 무너뜨렸고 하루를 더 쉬려고 했던 마음을 접고 바로 산티아고로 입성하게끔 했다. 그리고 역시나 산티아고의 첫 모습도 초라할 뿐이었다. 날씨가 침침한 탓도 있겠지만, 칙칙한 현대식 건물들과 뭔가 딱딱한 느낌이 사람들. 모든 게 지금까지와 달리 평범했다. 마치 지금까지의 여정들에서 만났던 것들이 모두 꿈이었던 것처럼. 여유로운 모습으로 부엔 까미노!를 외치던 사람들도 이젠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이곳에서 나는 그저 홀로 동떨어진 사람일 뿐이었다.

나의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Catedral de Santiago de Compostela)까지는 40분 정도를 더 걸어가야 했다. 한참을 걸어가니 그나마 북적거리는 구시가지가 펼쳐지며 옛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진정한 산티아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곧 거대한 바로크ㆍ고딕양식의 성당과 종탑을 볼 수 있었다. 야고보의 유해를 모시고 있다는 스페인에서 가장 큰 성당 중 하나인 산티아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날 내가 본 것은 성당의 뒷모습 이였다. 그럼에도 그 웅장한 산티아고 성당 앞에서 나는 피로함과 큰 허전함을 느꼈다.

 

산티아고 성당의 뒷모습. 본 사진은 도착 다음 날에 찍어서 날씨가 좋지만 당일에는 날씨마저 칙칙했다.

26일 동안 산티아고라는 목표에 도착하기 위해 매일같이 걸었다. 내가 왜 걷는지, 무엇을 위해, 혹은 찾기 위해 걷는지도 모른 채 그저 걷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 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기대를 안고 언덕 위에 올라 그 산티아고(물론 도시를 말 하는 겁니다. 성당 말고)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곳은 내가 바랐던 특별한 웅장함이나 성스러움보단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삶을 사는 도시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얼 바란 것이고 무얼 위해 걸었던 것일까. 나는 답을 찾기 위해서 까미노를 걸었지만 까미노는 내게 더 많은 문제들을 던져주었다.

이 길은 애초에 답이 있는 길도 끝이 있는 길도 아니었다. 다만 각자의 인생 속에서 끝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걸어가는 방법과 그 재미를 가르쳐 줬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까지 걸어오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많은 만남들과 아름다움들을 지나왔기 때문에, 그 하나뿐인 순간순간들이 모여 나의 까미노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삶 속에서도 나의 까미노는 여전히 계속 되기 때문에,


산티아고 대성당의 종탑.

[에필로그에서 계속]

[글/사진 강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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