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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퍼스트 펭귄 - 85세, 아직도 소녀 같은 마음으로 시를 쓰는 이난구 어르신 - " 여든다섯인데 상도 타고 전시도 하니, 새 삶을 찾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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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화정역 문화광장에서 열린 '고양시 평생학습축제'에서 진행한 시화전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이난구 어르신.



인생 길은 멀고도 끝이 보이지 않네

가도 가도 험난하고 숨이 차네

가다 보면 자갈밭 길도 가고

돌도 많고 가시밭 길도 가네

힘이 들어 허덕이며 가고 있네

배가 고파 허리띠를 졸라 매고

큰 산을 넘고, 또 한 고개를 넘어

숨을 몰아 쉬네

너무도 힘이 들어서 돌을 방석 삼아

앉아서 사방을 둘러보니

가는 길가에 빨간 꽃 한 송이를 보았네

그 꽃 향이 너무도 좋아 그 자리에 주저앉아

가던 길을 멈추고 삶을 찾았네


-이난구 어르신의 시 ‘ 한 인생 길 ‘



“ 여든다섯인데 상도 타고 전시도 하니, 새 삶을 찾았지 ” 


 

케이프런티어의 두 번째 퍼스트 펭귄으로 선정된 이난구 어르신을 만난 건 지난 24일, 화정역 문화광장에서 진행된 '고양시 평생학습축제' 에서 였다. 쌀쌀해진 날씨에 스카프와 모자까지 챙겨쓰고 나온 어르신은 “취재온다고 나름대로 색깔 맞춰 입고 나온거야" 라며 수줍게 웃었다. 어르신은 여든다섯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곱고 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벌써 글을 배운지 2년이 다 되었다는 어르신에게 넘치는 글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글을 처음 배우기로 마음 먹은 계기는 무엇인가요?


 

"내가 어릴 때는 부모님 슬하에서 곱게 자라며 일제강점기 때도 학교를 다녔었어. 아주 뛰어난 우등생이었지. 그런데 그때는 학교에서 한글이 아닌 일본말을 배웠어. 그래서 졸업 한 뒤에 야학으로 2달 동안 한글을 배웠는데, 그 후로 맞춤법이 계속 바뀌더라고. 점점 읽고 쓰기가 힘들어졌어. 그러던 중에 전쟁이 났고 가족들이랑 부산으로 피난가서 난포동 시장에서 눈깔사탕도 팔고, 남의 집 허드렛일도 해가며 힘들게 지내느라 공부를 할 여유가 없었지. 그렇게 젊은 시절에 내 아기도 굶겨야 할 만큼 힘들게 생활하며 정말 열심히 피땀 흘려 한 푼씩 모으고 또 아껴서 지금의 집을 마련하게 되었고 어느정도 평범한 생활이 가능 해졌지. 그렇게 딸도 대학에 보내고 손자,손녀까지 키워서 대학에 보내고 나니 이제 내 하고 싶은 일도 좀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어. 그 때 마침 집 앞에 복지관에 글사랑 교실이 있다고 해서 배워 보기로 마음을 먹었지."


 

-특별히 시를 즐겨 쓰게 된 이유가 있나요?

 


" 2013년 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읽기는 되는데 쓸려면 받침이 항상 헷갈려서 애먹었지. 그래도 매일 숙제는 열심히 해 갔어. 그러다가 2014년 10월에 복지관 백일장에서 상을 탔어. 그때를 계기로 용기를 얻어서 틈틈히 시를 쓰게 됐지. 내 모든 고생살이가 너무 힘들어서 그 것 들을 적어 나가기 시작했어. 마음에 쌓인 걸 적어 나가기 시작하니 마음도 홀가분 하고 통쾌감이 느껴지더라고. 사람들이 내가 쓴 시를 읽을 때 마다 기분이 즐겁고 기운이 나는 것도 있고. 요즘은 새로운 삶을 사는것 같아."


-여든다섯의 나이, 글 배우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배우는데 어려운 건 없었어. 늙어서 머리에 입력 하는 게 느려서 그렇지, 젊었으면 벌써 했을텐데. 그래도 복지관에 안영자 선생님이 너무 자상하고 세밀하게 강의해주셔서 늘 재밌게 수업 듣고 있어. 요새는 몸이 힘들어서 한 동안 글을 못 썼어. 하지만 숙제는 늘 밤 늦게 까지라도 해서 가. 아직도 난 덜 배웠어, 계속 배워야지. 나이가 많아서 힘든 건 없어. 근데 복지관에서 가는 나들이는 힘이 들어서 이제 못 가겠더라고. 난 글 배우는 것 보다 어른 노릇하기가 제일 힘들어. 평생을 구김 없이 어른 노릇 하려고 노력했어, 옆에 힘든 사람들도 다 돌보면서 사느라 힘들었지. 



'고양시 평생학습축제' 시화전 게시판에 남긴 이난구 어르신의 방명록.


-앞으로의 새로운 꿈이 있나요?

 


"앞으로는 건강만 계속 따라준다면 힘 닿는 대로 마지막 까지 글도 꾸준히 쓰고 움직여야지. 손녀가 저번 달에 나 시집 내주겠다고 시 공모전에 내 시를 냈다던데 결과가 아직 안나왔어. 혹시 떨어지더라도 손자,손녀가 꼭 책 한 권 내주겠다고 매일 그래, 날 더러 시인이라고. 그래서 꿈은, 열심히 시 써서 진짜 시집 한 권 내보는 게 내 꿈이이야. 시집 나오면 친구가 한 권 달라는데 내 친구들은 줘도 못 읽잖아.(웃음) 그리고 손자,손녀 얼른 빨리 시집 장가 가서 아기 낳고 그랬으면 좋겠네.


-마지막으로 꿈을 품고 있는 청년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나는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꿈이였어. 전쟁 때문에 학교를 다 마치지 못 해 꿈을 이루지 못 했지만, 지금 이뤘잖아. 내 나이 팔십 넘어서 성공한 거지. 요즘 젊은이들은 예전 보다 좋은 환경인데 돈만 번다고 다들 힘들어해. 그래도 하나씩 자기만의 꿈을 가지고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고 벌어서 차곡차곡 자기의 원하는 바를 향해 나아가고, 좋은 꿈을 안고서 걸어 갔으면 좋겠네. 늦어도 포기하지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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